2022. 12. 24. 15:27ㆍReading Life
책 제목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 독후감 제목 : 내 삶의 자세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눈길을 확 잡아끄는 제목에 사로잡혔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고 싶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마침 책을 들어 작가를 확인해보니 내가 여러 영상이나 매체에서 익히 들어온 허지웅 작가였다. 이전에도 관심이 있던 작가였고, 꼭 그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었기에 보자마자 책을 손에 집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책과 만났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작가가 이렇게 힘든 삶을 보냈는지 몰랐기에 혈액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며 읽었다. 결국엔 암을 이겨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이야기가 정말 선명하게 와닿았다. 하루하루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고 어느 날은 다시 붙기 힘들 정도로 꺼져버릴 것 같은 날들의 기록을 읽어나갔다. 그것을 버텨내는 작가의 상황에 탄식하고 이겨내는 모습에 감동하면서 작가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던 시기가 부대에 오고 차근차근 적응하며 견뎌내던 시기였기에 힘든 상황을 이겨낸 그의 이야기에 더 빠져든 게 아닌가 싶다.
그의 길고 긴 기록들 중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그래서 가장 어둡고 깊었던 밤의 이야기를 읽고 정말 그의 고통에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고 수액을 맞고, 약을 먹어도 해결하지 못한 이유 모를 복통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하루 이틀 밤을 내리 새우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끙끙 앓던 내 기억이 떠오르며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그 밤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고 길어서 아픔을 버티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프고 괴롭고 힘들었었다. 작가는 그 깊은 밤을 보내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한마디 도와달라는 말을 못 했던 것이 그리 아쉬웠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그와 다르게 부모님이 밤낮 구분 없이 옆에서 간호를 해주셨다. 그렇기에 잘 버틸 수 있었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내 삶에 대한 감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건장한 남성이라면 오게 되는 군대도 어떻게 보면 이생에서 밤 같은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던 일이나 공부를 내려놓고 1년 반의 기간 동안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시기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밤이 부모님과 함께여서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전우들과 함께 군 생활의 의미를 찾고 하나둘씩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쌓아나가다 보면 그 길고 긴 밤의 시간이 오히려 추억이라는 별로 수놓은 아름다운 밤의 시간으로 소중하게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써낸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 생각을 써내려 간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이라면 천 가지의 고통의 천장과 바닥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그렇기에 자신은 개개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의지로 그 고통의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버티며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삶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다고 이겨내라는 말로 응원하며 단락을 마무리 짓는다.
이 내용을 읽고 부대에 처음 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면서 많이 서투르던 시절이 떠올랐다.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잘 해내지 못하던 내 모습에 힘들어 했고, 나만 다른 사람보다 이런 문제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상황들이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면 모두에게 인정받고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동기들과 함께 이겨냈다. 결국 내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전처럼 힘들어하지 않고 잘 적응하여 전우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나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나의 의지로 그 삶을 버티고 살아가려고 노력했고 결국 살아내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자리에서 너무 힘든 상황을 겪고 잇는 전우가 있다면 혼자서 버텨내지 않아도 된다고, 힘들어하는 전우의 손을 잡고 함께 이겨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한 번 쭉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이 준 여운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천천히 한두번 정도 더 읽다 보니 작가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이제는 내 군 생활의 지향점이 된 글귀를 찾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작가가 원한 것처럼 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게 될 것 같은 글귀였다. 작가가 가끔 기도할 때 사용한다고 한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바꿀 수 없는 걸 평온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부대 안에서의 소속이나 내가 맡은 보직,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내가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잘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해나갈 수 있는 평온한 마음가짐을 갖고 임해야겠다는 생각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바꿀 수 없는 건 이미 벌어진 일들이다. 내가 한 말과 행동, 선택으로 인해 이미 벌어진 일들에 계속 신경을 쓰고 고민한다면 나의 마음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도 부대에 와서 이런저런 실수를 하고, 내가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른 행동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잔뜩 하게 되었다.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진 것 같이 오히려 점점 힘들어지고 그런 문제나 상황이 나의 삶에 가져다주는 결과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다음 발걸음을 걸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다음 발걸음을 걸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사람인 것이다. 작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한다. 이렇게 은혜와 용기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다짐과 실천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마지막 줄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서도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없다며 인내하고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야 한다며 마음에 담아두고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막기 위해서 쓰였다고 첨언한다.
나의 군생활은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갈 때,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으로서의 다짐과 실천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다짐과 실천을 통해 선임에게는 믿음직한 후임으로서, 동기들에게는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좋은 동기로서, 후임들에게는 친절하고 듬직한 선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군 생활을 모두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이 생겼다.
처음에 군대에 입대했을 때는 이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시간이 죽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완성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제한되는 것이 많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가면서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마주할 군생활의 끝에서 충분히 값진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군생활을 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처음 군대에서 독후감을 써서 최우수상을 받은 독후감이고, 이후의 독후감을 쓸 수 있었던 발판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적응하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고,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나의 도피처가 바로 책이었고, 책을 읽으며 느끼는 나의 감정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싫어 하나둘 적어놨던 문장들로 완성한 독후감이었다. 이때의 나에게는 버텨줘서 고맙다는 마음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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