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공대생의 군대 공략집 - 훈련소

2022. 9. 5. 04:28Military Life

0. 이거 빨라도 너무 빠른데... 

사실 입대일이 4월 중순쯤일줄 알아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4월 5일로 정말 빨랐다. 기술행정병 합격 발표일자가 1달전인 3월 3일 쯔음으로 기억하니까 정말 촉박했다. 천천히 주위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차근차근 가면 되겠다 하고 있었는데 약속을 잡다보니 한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학교 친구들 몇번 만나러 서울쪽에서 약속 몇번 잡고 중고등학교 친구들 만난다고 약속 몇번 잡으니까 거의 매일매일이 약속이었다. INFP/J 인 나로서는 매일매일 나가는 약속이 쫌.... 사실 쫌 많이... 힘들었다.  나는 일주일에 2~3번 정도로 나가야 좀 에너지 충전이 되는데 진짜 거의 매일 나가다 보니까 진짜 죽을뻔 했다. 2월 말에 입대했던 친구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코딩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여서 그런 공부들을 좀 더 하고 가고싶었는데 진짜 공부를 거의 못한 것 같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코딩 같은 경우는 내 생각에 어느정도 실력 수준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좀 수월하게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사실 나도 아직 그 수준이 되어본 적이 없어 누군가에게 이래저래 코딩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없는 처지다. 군대 안에서도 부족하다고 나름 스터디도 하고 백준도 찔끔찔끔 간 봤는데 여전히 내 실력은 군대 가기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 수준이 되려면 확실히 시간을 좀 크게크게 써야되는데 그걸 군대 안에서는 잘 못하니까 늘지 않는 것 같다고 결론을 냈다.

내가 보기에 군대에서 '재수'  이런 목표 아니고서는 시간을 잘게잘게 써도 실력이 늘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괜히 자격증을 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게 아니다. 코딩을 죽어도 해야겠다 싶으면 코딩테스트 준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지금까지도 딥러닝 스터디도 하고 프론트 강의도 좀 들어보고 백준 문제도 풀어봤지만 백준 쪽이 가장 시간 가성비가 뛰어난 것 같다. 길게 집중해서 보거나 주기적인 복습이 조금 어려운 군대 상황상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 때문에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부를 하게되면 동기가 줄어들고, 점점 현실에 치인다. 나는 군대에서 전역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연등을 했다. 나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람은 현실에 치이면 미래를 보기 힘들다. 현실 속에서도 결과를 내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자. 나는 Solved.ac 에서 문제를 풀면 롤에서 티어가 올라가듯이 내 점수가 올라가는 게 보여서 재미있었다. 

1.  매일의 기록 

 이 시기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신촌 무인양품에서 내 군생활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를 만났다. 바로 일기장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훈련소에서 핸드폰도 안되고 뭐 할 수 있을 게 없는 걸로 들어서 일기라도 써야겠다. 이 시간은 지나가면 그냥 사라지는 너무 아까운 순간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사게 되었다. 심지어 색도 빨간색이라 2900원에 데려왔다. 이 선택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사건이 있거나 노력하지 않는 이상 잘 적게 되진 않는다. 역시 핸드폰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마이너스가 되는 순간도 많은 것 같다. 사실 지금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 글을 적을 수 있는 것도 일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월 한달은 정말 순식간이었고, 그 한 달 동안 빨랐음에도 정말 많은 것들을 했다. 사실 이전까지도 나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고3 수능이 끝나고 수시 면접을 마치고 나서는 대학교에서 하는 수학/영어 레벨 테스트 공부도 신경쓰고, 하여튼 뭔가 나보고 뭘 하라는 순간들만 있었다. 근데 3월엔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이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하루는 카공을 하기위해 가방을 메고 집에서 가까운 스타벅스를 갔다. 받은 기프티콘도 쓸 겸, 산책도 할 겸 나갔는데, 자리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자리가 없기에 그냥 집으로 가거나 스터디카페를 갔을텐데 이 날은 좀 달랐다. 시간도 많은데 굳이 촉박하게 어딘가에 꼭 가서 뭘 해야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처음으로 좀 먼 공원에 자리잡은 스타벅스까지 산책하며 걸어갔다. 정말 사소한 것이었는데 정말 인상깊었다. 나는 여태까지 여유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고 싶었다. 군대에 들어가서 책을 많이 읽고 오자는 정말 누구나 하는 목표지만 그래도 그 목표를 세웠다. 뭐라도 계속 목표를 세우고, 꿈을 정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내 시간이 의미 있어질 것 같았다.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우면서, 미치겠는 그런 삶이었던 것 같다. 진짜 그냥 지금 생각해도 군대 가기 전 1달은 짧은 순간순간은 행복했지만, 그냥 지옥이었다. 뭔가를 먹다가도 다음달이면 이걸 못 먹겠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 다음달이라는 기간은 점차 줄어들며 다음주면..... 내일모레면..... 12시간뒤면.....으로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빠르게 진짜 무슨 KTX 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진짜 짜증났다.

다들 겪는 것이라지만 정말 다들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미필자들이 훈련소에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들어오나 절대 하지 못한다. 훈련소에서 일기를 쓰겠다는 내 포부또한 무너졌다. 나는 코로나 격리를 훈련소에서 했을 시점이라 2주격리 기간에는 일기를 썼는데 3주동안 훈련하는 동안은 거의 쓰지 못했다. 만약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노트와 본인이 좋아하는 펜을 챙겨가자 
추천하는 것은 후반기 교육을 받는 보직이라면 꼭 이때 일기를 쓰자. 일기를 못쓰겠다면 책이라도 읽자. 이 때보다 여유로운 때는 앞으로 군생활을 하며 말년을 제외하고는 없다. 괜히 후반기가 꿀이다 이러는 게 아니다. 먼저 하고 간 사람들을 믿자. 다 당신이 한 것들을 버티고 끝낸 사람들이다.

2.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육군 훈련소로 입대하던 날. 21년 4월 5일. 그 날은 지옥이었다. 2시에 입소였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발했고, 논산 근처에서 먹지 않고, 가는 길에 맛있다는 소고기집에 들려 소고기를 먹었다, 무슨 도토리먹인 소고긴가 그랬던 것 같은데, 정말 맛이  있었는데, 진짜 먹고싶었던 것들인데, 이렇게나 맛이 없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가고싶었다. 소고기를 먹다 자리를 나와 화장실에서 한 10분간 앉아있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긋지긋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끌려가야하는지, 내 신세가 처량하고 내 삶을 한탄했다. 역시 무언가 모르는 두려움이 제일 무섭다. 그렇게 훈련소로 향했다.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논산훈련소로 입대하는 훈련병들이라면 되도록 밥은 논산에서 먹지 말자.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그 주위에서 밥먹으면 죄다 입대하는 사람들이라 더 슬프고 더 짜증난단다. 본인 지역에서 가는 길에 시간 맞춰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좀 이르게 11~12시 쯤 아점? 느낌으로 맛있는 걸 먹고 들어가자. 콜라 많이 먹어라 초콜릿 많이 사먹어라 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탄산 음료는 의외로 많이 줘서 생각이 별로 안났고, 초콜렛은 자주 주는데도 떙겼다. 몰래 가져갈 수 있다면 주머니에 한두개정도 챙겨가자. 나는 개인적으로 자대갈때까지 치킨같은 튀김류가 엄청 많이 생각났다. 밥이 생각보다 기름지지 않고, 튀김이 나와도 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맛이다. 특히 훈련소 튀김은 더 그렇다. 내가 햄버거를 유독 좋아하긴 하지만 수제 햄버거랑 감자튀김, 콜라 이렇게 먹고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식사는 알아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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